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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2막 성공 과기인들, 그들 공식엔 000이 있었다(헬로디디, 2020.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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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김지영 기자   



"연구원 정년 후 연금 받으며 사는 것도 좋겠죠. 하지만 좋은 연구 아이템만 있다면 창업에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일반 직장인이 모을 수 없는 자산을 손에 쥘 수도 있으니까요. 많은 연구자가 창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연연 출신들이 활약했으면 좋겠고, 그 무대가 대덕이길 늘 바랍니다."

출연연 정년퇴임을 3년 앞두고 연구소를 뛰쳐나와 바이오벤처를 창업한 연구자가 있다. 1세대 바이오벤처 선두기업 씨트리(현 HLB)를 창업한 김완주 박사다. 1998년 당시 58세 나이로 신약개발을 꿈꾸며 연구소 동료 4명과 함께 창업한 그는 출연연 출신 중에서도 성공한 CEO로 꼽힌다. 올해로 만 78세. 약 20여년간 회사를 경영해온 그는 지난해 11월 씨트리 보유 주식을 메디포럼에 모두 넘기며 경영에 손을 뗐다. 그가 최대 주주로 있던 지난해 씨트리 시가총액은 688억원이었다.

김 박사는 독일 유학과 연구생활 후 1977년 귀국해 KIST(한국과학기술연구원)와 화학연구소 의학연구부장으로 연구생활 중 창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국내 제약기업이 제네릭(특허가 만료된 오리지널 의약품의 모조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데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54세 청년 김 박사는 연구소에 사표를 던지고 세상으로 나왔다. 

58세에 바이오기업 '씨트리'를 창업한 김완주 박사. 그는  "많은 연구자가 창업했으면 좋겠다. 출연연 출신들이 활약했으면 좋겠고, 그 무대가 대덕이길 늘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김완주 박사]58세에 바이오기업 '씨트리'를 창업한 김완주 박사. 그는  "많은 연구자가 창업했으면 좋겠다. 출연연 출신들이 활약했으면 좋겠고, 그 무대가 대덕이길 늘 바란다"고 말했다.[사진=김완주 박사]

 

지금이야 50대를 당당히 청년이라 부르지만 20년 전 분위기는 달랐다. 늦은 나이 창업 소식에 주변의 만류가 컸다. 김 박사 자신도 창업은 처음이라 두려움도 앞섰다. 회사 경험이 필요했던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준 곳은 연구소에서 연을 맺었던 한미약품이었다. 한미약품은 국내 제약사 최초로 다국적 제약사 로슈에 항생제 '세프트리악손'의 개량제법을 수출했는데 그 주역 중 한 명이 김 박사였다.(기술수출로 받은 성과보수는 향후 씨트리 종잣돈이 됐다) 그는 한미약품 부사장으로 근무하며 바이오연구실을 처음으로 만들면서 R&D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경영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기 시작했다.

4년 후 준비가 됐다고 느낀 김 박사는 화학연에서 함께 일했던 연구원 4명과 함께 용인의 명지대학교 실험실을 하나 빌려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현실은 전쟁이었다. 신약개발을 위해 열심히 연구했지만 들어오는 돈이 없어 자금이 부족했다. 그러다 IMF가 터졌다. 회사들이 견디지 못해 무너졌던 순간이었지만 그는 기회로 삼았다. 신문에서 독일의 제약회사 바이엘이 한국에 설립했던 공장을 팔고 생산을 접겠다는 기사를 본 것. 그는 무작정 바이엘 한국지사에 연락해 지사장과 만남을 시도했다. 

공장을 넘겨달라는 제안에 바이엘 측은 처음에 어리둥절했지만 오랜 대화 끝에 저렴한 가격에 넘겼다. 공장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생업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김 박사도 학교연구실을 넘어 제대로 된 제약회사를 하나 갖게 된다. 여기에 김대중 정부가 IMF 극복을 위해 벤처를 키워드로 다양한 육성정책을 쏟아내며 투자를 받았다. 그렇게 생산설비까지 확보한 김 박사는 R&D를 통해 치매와 파킨슨병 등 퇴행성 노인질환 치료제와 척수소뇌변성증 관련 신약을 개발하는 등 펩타이드 전문 바이오·제약기업으로 씨트리를 성장시켰다. 

회사 경영과 R&D에 집중하면서도 그는 여러 바이오인들과 바이오벤처협회를 만들어 후배들의 창업을 독려했다.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세계화를 위한 컨설팅과 연구만 하던 회사들이 어떻게 제품을 생산하고 이익을 낼 수 있는지 자문하는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20여 년을 출연연에서, 또 20여 년을 경영인으로 살아온 그는 씨트리를 메디포럼제약에 약 206억에 인계했다. 현재는 회사 경영에 손을 떼고 남양주시에서 은퇴 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화학연 동문회장으로도 활동하며 대전을 자주 오간다는 그는 "기회가 좋은 만큼 안정된 직장에 안주하지 말고 창업에 도전해 보길 바란다"고 제안했다. 연구자들 창업을 장려하는 좋은 프로그램이 너무 많다는 것. 그는 "지원은 충분하니 이제는 연구자들이 나설 때"라며 "연구소에 있으면서 자신만의 아이템을 꼭 가져라"라고 조언했다.

이어 그는 "과거엔 전쟁에서 사람을 많이 죽인 사람이 영웅이 됐지만. 이제는 사람을 많이 살리는 사람이 영웅이 돼야한다. 그 방법의 하나가 신약개발"이라며 "여기에 창업하기 최적의 조건을 갖춘 곳은 대전뿐이다. 대덕연구단지의 많은 연구자가 창업에 도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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